불법행위소송에서 기여도 감액이론
1.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범위에 관한 전통이론은
영미법상 및 프랑스법 상의 전손배상원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한다. (불법행위책임에 있어서 피해자의 우연한 사정이나 신체적 결함으로 인한 손해는 특별손해가 아니라 통상손해로 본다는 것, 소위 ‘The tortfeasor must take the victim as he finds him” 원칙)
이 원칙에서는 경합되는 원인이 자연적인 사실일 경우에도 불가항력이 아닌 이상 전손해배상원칙을 적용하여야 한다고 한다.
2. 수정된 이론 - 손해배상의 비율적 인정론
그러나 현실문제에서 손해배상을 둘러싼 분쟁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고 이러한 다양한 실제의 구체적인 사건에서 전손배상원칙을 벗어나 적절하고 타당한 결론을 도출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각국의 재판실무과정에서 손해배상의 비율적 인정론이 대두되었다. 이 이론은 ‘사고관여당사자간의 손해부담의 공평화'라고 하는 요청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 심증도에 의한 비율적인정론
손해발생에 관한 복수의 원인 요소 중 어느 것이 결과발생의 원인이 되었는지 불분명한 경우에 적용되는 이론이다. 각각의 요소 중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할 확률에 따라 비율적으로 책임을 긍정하자는 이론이다.
나. 기여도 참작이론
손해발생에 복수의 원인이 동시에 작용하였음을 전제로 하여 각각의 원인이 기여한 정도에 따라 배상을 명하는 이론이다.
(1)부분적인과관계론(양적평가)
복수의 원인의 각각의 기여정도를 따로 판단하여 배상액을 비율적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기여도에 의한 부분적 인과관계론에서는 복수의 원인에 대하여 각각의 인과관계를 양적평가를 하는 것이고 기존의 상당인과관계론은 어떤 결과에 대한 어떤 조건의 질적(질적) 평가를 의미하는 것이지 양적(양적) 평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이론은 서로 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과관계의 존재는 상당인과관계론에 의하여 판단하고 그 후 부분적인과관계론으로 개개의 요소의 인과관계를 양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2)기여도감액설
기여도를 인과관계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당인과관계에 의하여 인정된 손해 중에서 기여도에 따른 감액을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앞서 본 부분적 인과관계론과의 차이는 인과관계 자체를 비율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배상액산정에서의 참작사유에 불과한가에 있다.
참작사유의 발생단계별로 나누어 고찰하면,
'손해발생의 잠재적 사정에 의한 감액‘은 손해원인인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도 그로 인한 손해와 동일한 손해를 야기시켰으리라고 생각되는 다른 사정이 이행기 또는 불법행위시에 이미 피해자에게 존재한 경우에 이를 배상액 산정에서 참작하려는 이론을 말한다. 예컨대 이미 폐암 말기로 사망할 것이 확실시되는 피해자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경우가 그 예다.
'손해발생의 후발적 사정에 의한 감액' 은, 위와 같은 사정이 이행기 또는 불법행위시 이후에 발생한 경우에 이를 배상액 산정에서 참작하려는 이론을 말한다. 예컨대 교통사고로
입원치료중 전염병에 감염된 사건과 같은 경우이다.
3. 판례에 나타난 기여도 감액설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 76다1877판결부터 기여도감액설이 인정되어 왔다고 한다.
이 사건은 간장질환이 있던 피해자가 교통사고로 기왕증이 악화되어 사망한 사건인 바,
"사고를 유일한 원인으로 하여 피해자가 사망한 것이 아니고 피해자의 지병과 사고가 경합하여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 있어서는 그 사망으로 인한 전손해를 사고에만 인한 것으로 단정함은 불법행위책임으로서의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보아 부당한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사고가 사망이라는 결과발생에 대하여 기여하였다고 인정되는 기여도에 따라 그에 상응한 배상액을 가해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옳다"고 판시하여 배상액을 감액하였다.
위 취지는 다른 판례들에 의하여 계속 지지되어 왔다.
그리고 기여도참작설은 예견가능성에 따라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할 것인가를 결정하던 종래의 소위 ‘특별손해’의 개념과는 다른 각도에서 손해를 분담하는 것이다.
‘채무불이행과는 달리 평소 전혀 무관계한 사람 사이에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교통사고에 있어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체질 등 속성에 대하여 구체적 예견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예견가능성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부적당하다.
따라서 피해자의 특수한 사정은 기여도참작설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하야야 할 것이고, 판례도 그런 맥락에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통사고 피해자의 기왕증이 그 사고와 경합하여 악화됨으로써 피해자에게 특정 상해의 발현 또는 치료기간의 장기화, 나아가 치료종결후 후유장해정도의 확대라는 결과 발생에 기여한 경우에는, 기왕증이 그 특정 상해를 포함한 상해 전체의 결과 발생에 대하여 기여하였다고 인정되는 정도에 따라 피해자의 전 손해 중 그에 상응한 배상액을 부담케 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견지에서 타당하다‘(대법원 1994.11.25. 선고, 94다1517 판결).
‘가해행위와 피해자측의 요인이 경합하여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대된 경우에는 그 피해자측의 요인이 체질적인 소인 또는 질병의 위험도와 같이 피해자측의 귀책사유와 무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당해 질환의 태양·정도 등에 비추어 가해자에게 손해의 전부를 배상시키는 것이 공평의 이념에 반하는 경우에는, 법원은 그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서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적용하여 그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기여한 피해자측의 요인을 참작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98다12270판결)
위 대법원판결은 판결이유에서 ‘다른 한편, 망인에게 패혈증을 일으킨 녹농균은 정상인의 장내에도 존재하는 흔한 균으로서 저항력이 있는 정상인에게는 아무런 질병을 일으키지 아니하는데도 망인의 신체저항력이 낮았던 관계로 망인이 당초 수술 받은 부위가 아닌 항문 부위로 침투한 녹농균을 이기지 못하여 패혈증을 앓게 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점 및 녹농균에 의한 그람음성장관성 패혈증은 치사율이 40% 내지 60%의 치명적인 병인 점 등에 비추어 망인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를 치료를 담당하였던 의사측에게 전부 부담하게 하는 것은 공평의 원칙상 부당하다고 할 것이므로 망인의 이 사건 패혈증 발병 경위와 그 치료 경위, 패혈증의 치사율 등 모든 사정을 참작하면 피고의 이 사건 손해배상책임을 40%로 제한함이 적정하다’ 고 판단한 원심의 판시취지를 지지하였다.
위 대법원 94다1517 판결은 배상액산정시의 창작사유로서 '피해자의 체질적 소인' 이외에 "망인의 사망원인이 된 녹농균에 치한 패혈증의 치사율이 높다는 점" 즉 '질병의 위험도'와 같은 자연적 요소도 참작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반드시 피해자측의 사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의 공평한 부담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이를 참작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공해소송에서 자연적 요인을 고려하여 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의료과오소송에까지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병발생에 관하여 과실이 인정될 경우 환자의 허약한 체질, 면역기능의 저하 등의 기여도를 참작할 수 있는 것인지 문제가 된다.
교통사고로 골절상을 입은 유아(5세)가 입원치료중 바이러스성 뇌염에 감염되어 후유장애를 남긴 사안에서 바이러스성 뇌염이 면역기능이 저하된 사람에게서 발병률이 높다고 하더라도 장기입원으로 면역기능이 저하되었다는 점은 바이러스뇌염에 원인력을 제공한 기왕증으로 볼 수 없다고 한 예( 서울고법 1995.4.6. 선고, 94나3362 판결).
누구의 책임도 아닌 우연한 불운을 일종의 기여도로 보고 감경사유로 한 사례도 있다.
(대전고법 1997.6.12. 선고, 96나8268 판결)
4. 기여도의 구체적 적용방법
가. 판례는 구체적 적용에 있어서 기여도를 노동능력상실률에 반영하는 방법을 취하지아니하고, 전손해를 산정한 다음 책임의 제한부분에서 참작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판례상 나타난 계산방법
① 총손해액 ×{1- (과실상계 +기여도)}
② 총손해액 ×{(1-(100% -과실상계) × (100% -기여도)}
③ 총손해액 ×{1- (100% -기여도) ×(100% -과실상계)}
나. 기여도판정기준
와타나베식(1984년 개정) 기여도 판정기준*
단계 |
내용 |
기여도(%) |
0 |
사고와는 관계없이 상병이 존재한다는 판단과 사고에 의한 상병이라는 판단이 혼재하고 있 지만, 전자에 사망(상해 또는 후유장해)의 원인 을 구성하고 있을 확실성이 있는 경우 |
0% |
1 |
사고가 유발한 질환으로서 사고 후 단기간내에 사망한 경우 |
10% |
2 |
사고가 원인이 되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상병이 타 상병보다 열세인 사망(상해 또는 후유장해)의 경우 |
20% |
3 |
사고가 주원인이 되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상병이 타 상병보다 열세인 사망(상해 또는 후유 장해)의 경우 |
30% |
4 |
사고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상병이 타 상병보다 열세인 사망(상해 또는 후유장해)의 경우 |
40% |
5 |
사고와 관계없는 상병과 외상에 기인되는 상병이 서로 경합하여 그 한쪽만 가지고는 사망(상해 또는 후유장해)을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 |
50% |
6 |
사고와 관계없는 상병과 외상에 기인되는 상병이 서로 경합하여 그 한쪽만 가지고도 사망(상해 또는 후유장해)을 일으킬 수 있는 개연성이 많은 경우 |
60% |
7 |
사고가 원인이 되어 발생했을 가능성이 많은 상병이 타 상병보다 우세인 사망(상해 또는 후유장해) 의 경우 |
70% |
8 |
사고가 주원인이 되어 발생했을 때, 개연성이 많은 상병이 타 상병보다 우세인 사망(상해 또는 후유장해)의 경우 |
80% |
9 |
사고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했을 개연성이 많은 상병이 타 상병보다 우세인 사망(상해 또는 후유장해)의 경우 |
90% |
10 |
사고와는 관계없이 상병이 존재한다는 판단과 사고에 의한 상병이라는 판단이 혼재하고 있지만, 후자에 사망 (상해 또는 후유장해)의 원인을 구성하고 있을 확실성이 있는 경우 |
100% |
임광세식(1986년) 관여도 판정기준*
단계 |
내용 |
관여도 |
A |
외상과의 인과관계가 전혀 인정이 안 되는 경우 |
0% |
B |
외상과의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는 인정이 되나,타 원인에 (20%혹은30%) 기인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은 비율로 인정되는 경우 |
25% |
C |
외상과의 인과관계가 있을 가능성과 타 원인에 기인되었을 가능성이 반반인 경우 |
50% |
D |
타 원인에 기인되었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인정되나 외(70%혹은80%) 상에 기인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은 비율로 인정되는 경우 |
75% |
E |
외상과의 인과관계가 확실하게 인정되는 경우 |
100% |
5. 기여도와 상당인과관계와의 관련
어떤 원인에 대하여 다른 원인이 결과에 대하여 기여도가 100%이면 원래의 원인은 기여도가 0 %이고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것이 된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중 환자의 특수체질과 우연한 사정이 겹쳐 그 특수체질과 우연한 사정이 기여도가 100%라면 교통사고와 그 중병은 조건적인과관계는 존재할지언정 상당인과관계가 부정될 것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와 의료사고가 겹쳐서 나타난 그 새로운 증상이 원래 당초의 상해를 치료하는데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 때에는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그 새로운 증상에 대하여까지 책임을 지지는 아니한다. 책임을 지는 손해라고 하기 위하여는 그 새로운 증상이 일반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통사고로 다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투여된 스트렙토마이신의 부작용으로 위궤양이 발병하였음에도 의사가 이를 방치하고 투여를 계속해서 사망한 경우에는 사망은 의사의 진료상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므로,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과 사망간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사망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판결도 있다.
6. 공동불법행위와 상당인과관계
기왕증이 다른 원인의 하나로 중복된 경우와 달리 가해원인이 중복된 경우, 즉 새로운 증상이 교통사고로 인한 것인지, 의료사고로 인한 것인지 밝힐 수 없을 때에는 민법 760조 2항의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이 성립한다. 피해자가 교통사고로 두개골내 출혈의 상처를 입고 수술 중 마취 과정에서 질소 가스를 잘못 공급함으로써 중독으로 인해 사망한 경우에는 사인이 복합되어 일어난 것이므로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한다.
피해자가 교통사고로 7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상하악골 골절 등이 상해를 입고 대학병원 치과에 입원하여 할로테인 등으로 전신마취를 한 가운데 안면골절부위 관혈적 정복술을 받고 그로부터 16일 후 전격성 간기능부전증으로 인한 뇌부종 및 호흡중추마비로 사망한 경우에 있어서 적어도 할로테인 투여로 인하여 전격성 간기능부전증이 발생하였고, 전신마취 등 시술과정에서 의사 등의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라면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전신마취는 위험한 것으로서 전신마취로 인한 사망은 일반 경험상 그 가능성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교통사고와 피해자의 사망간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1990.6.26 선고 89다카 7730판결)
또다른 판례를 보면
교통사고로 치료가 완전히 종결되기 전에 의료사고가 발생하여 증상이 확대된 경우에도 (사안은 구입한 보행보조기만 착용하고서 혼자 걸어 다닐 정도로 호전되어 더 이상 입원할 필요 없이 퇴원하여 통원치료만 며칠 받으면 족하니 퇴원해도 무방하다는 권유를 피고로부터 받던 중 3.20.경 위 병원원장실에서 피고로부터 관절굴신운동을 시키는 물리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물리치료중 의사의 과실로 증상이 악화된 사건이다)교통사고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므로 자동차보험사와 병원의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 92다4871판결)
위 사안은 미묘하여 만약 해당 진료과오를 사실상의 치료종결 후의 새로운 진료과오로 보게 되면 교통사고와 상당인과관계가 부인될 수 있는 사건이어서 논란이 있다.
참고로, 기여도나 공동불법행위 관련 사안은 아니지만 이시적 사고중복의 경우 인과관계의 차단 여부에 관하여, 1차 부상사고와 2차 교통사고사망사건 간에 2차 사고가 1차사고와 전혀 조건적 관계가 없다면 2차 사고로 인하여 손해가 중단된다는 판례가 있다. (79디156)
(92다4871)
* 부분은 인과관계와 손해배상의 범위(임종윤)에서 인용
2016.12.27.
신종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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